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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박물관 꼭 봐야할 작품] 자수를 두는 여인, 요하네스 얀 베르메르(Johannes Jan Vermeer)

루브르 TMI/루브르 작품 2020. 4. 29.


가방검사로부터 시작되는 루브르 박물관의 줄은 모나리자를 감상할때까지 이어진다. 

북적북적한 소란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다면 리슐리외관 2층을 추천한다. 사람없는 고요한 공간에서 위대한 화가의 작품을 오롯이 느끼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작디 작은 그림 앞에 서면 숨소리를 내는 것 조차 죄스럽다. 행여 나의 작은 숨소리가 집중하는 그녀에게 방해가 될까 있는 힘껏 숨을 참아본다. 따스한 햇살이 어디에선가 비춰오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 작품은 우리는 베르메르라 부르지만 실제로는 페르메이르라고 불렸을 17세기 네덜란드 화가의 작품이다. 대중에겐 다소 생소한 네덜란드 회화를 루브르 박물관은 꽤나 신경써서 전시한다. 19세기 근대 회화를 이끌었던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영향을 끼쳤기 때문일것이다.

베르메르의 작품을 설명하자면 빛 그리고 일상의 순간을 뽑을 수가 있다. 대기를 물들이고 있는 빛과 만져질것처럼 생생하게 표현되는 인물과 사물은 일상의 순간을 영원한 고요로 바꾼다. 이는 모네와 르누아르로 설명되는 인상주의와 일맥상통한다. 실제로 르누아르는 1870년 루브르 박물관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으로 이 자수를 두는 여인을 꼽았다. 


아무것도 걸려있지 않은 회색빛 벽과 인물을 따스하게 감싸는 빛은 우리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자수를 두는 여인에게 도달하게 한다. 작업복을 입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녀는 고상한 취미를 가진 중산층 여인으로 보인다. 자수를 두는 여인은 우리나라화 된 이름으로 실제로 그녀는 레이스를 만들고 있다(영어 제목은 The lacemaker). 과거 우리나라 양갓집 규수들이 여자의 덕목으로 자수를 두었듯, 서양의 여인들은 레이스를 만들었다. 17세기 네덜란드 중산층 여인의 개인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손꼽히는 회화지만 왠지 그녀와 가깝게 느껴지지는 않다. 화가는 인물 앞에 작업물 뿐만아니라 성서로 보이는 책, 커다란 쿠션 등 여인과 관람자 사이에 장벽을 만들었다. 그저 조용히, 조금 떨어져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기분이 든다. 


꽤나 특이한 그녀의 헤어스타일은 당시의 그 누구도 하고다니지 않은 모습이다. 여인의 의복이나 얼굴, 손의 표현 또한 당시의 화가들과는 다른 기법으로 그려냈으며 특히 쿠션 사이로 삐져나온 하얀실과 붉은 실 또한 액체처럼 흘러내리는듯이 그려져있다. 그녀가 두고있는 자수는 섬세하게 표현했음에도 흐뜨러진 실은 뭉개져있다고 할 수 있을정도로 흐릿하다. 연극무대와도 같은 극적인 그림을 마치 내 앞에 그 일이 벌어지고 있는것마냥 사실적으로 그렸던 17세기 바로크시대, 베르메르가 왜 이렇게 추상적인 기법을 사용하여 일상의, 그것도 평범한 여인의 그림을 그렸는지는 명확하게 알려져있지 않다. 다만 그의 작품에 매력을 느끼는 소수의 후원가가 있었고, 그들을 위해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내었던 한 화가가 있었을 뿐이다.


사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따로 있다. 요하네스 얀 베르메르의 이름은 몰라도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나 졸졸졸 우유 따르는 소리가 들릴것만같은 우유를 따르는 여인은 어디선가 한 번쯤 봤을법한 그림이다. 평범한 여인들의 일상의 순간을 그렸을 뿐인데 사람들은 왜 그의 작품에 열광하는 것일까. 그의 작품으로 인정받는 작품은 총 37점(그와중에 세 작품은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음) 있는데 화가 치고는 꽤 적은 작품 수이다. 일년에 2~3점 정도 그렸을 뿐이다. 하지만 그는 21세의 나이에 화가 길드로부터 장인으로 인정받았으며, 길드의 대표도 두번이나 역임했다. 11명의 자식을 부양할 수 있을 정도로 비싼 값에 그림을 사주는 애호가들도, 너무 귀해서 성모 마리아와 예수 그리스도를 그릴때만 사용했던 청색 물감의 원료 청금석을 구해다주는 후원가도 있었다. 그의 장인 또한 그가 그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었다고 한다.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도, 200이 지난 뒤 묻혀있던 그의 작품에 경외심을 느꼈던 19세기 화가들도, 그리고 현대의 우리들도 그의 작품의 신비함에 빠져든다. 신의 손길이라 느껴질정도로 따스한 그의 빛과 화가를 의식하지 않고 무심히 자신의 일상에 집중하는 인물들이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보이는 우리의 일상이 사실은 매우 숭고하고 또 존엄한 것이라 알려주는 느낌이기 때문이 아닐까. 


자수를 두는 여인은 작품을 작게 그리기로 유명한 베르메르의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작은 크기이기때문에(그래서 액자를 크게 만들었나...) 모르고 지나치기 쉽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고요한 순간이 필요하다면 찬찬히 네덜란드 회화관을 둘러보며 이 작품을 찾아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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