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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박물관 꼭 봐야할 작품] 저항하는 노예, 죽어가는 노예,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루브르 TMI/루브르 작품 2020. 4. 25.


혹자는 이야기한다. 미켈란젤로의 죽어가는 노예와 저항하는 노예로 지금 자신의 상태를 점검해볼 수 있다고.



나란히 전시되어있는 두 노예상은 각각 삶과 죽음을 대변한다. 과연 어떤 노예가 삶이고 어떤 노예가 죽음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발버둥치고 있는 노예가 죽기 싫어 저항하고 있는 모습이라 판단하여 죽음을, 편안히 잠들고 있는 노예가 삶이라고 답한다. 얼마나 아름다고 평화로운 삶인가. 공교롭게도 답은 반대다. 이들은 "노예"다. 하여 속박에서 벗어나려 반항하는 노예가 삶이고, 비로소 죽음을 맞이하여 편안해지는 노예가 죽음이다.  왼쪽이 저항하는 노예, 혹은 반항하는 노예라 불리우고, 오른쪽이 죽어가는 노예라 불린다.


미켈란젤로가 왜 삶과 죽음을 노예신분으로 표현하였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획일화된 당시 예술상에 평생을 부딪혀 자신의 길을 걸었던 미켈란젤로 본인의 삶을 표현한 것으로, 성직자나 귀족, 부자에게 종속되어 원하는대로 예술혼을 불태우지 못하고 결국 죽음만이 자신의 끓는 열정을 잠재울 수 있다는 것 아닐까 추측만 할 뿐이다. 

지금은 예술가가 작품을 제작하고, 그의 작품을 갖기위해 사람들이 경쟁한다. 하지만 과거엔 달랐다. 재료값을 감당할 수 있는 소수의 후원가를 찾기위해 예술가들은 끊임없이 구애하고 경쟁해야했다. 르네상스 3대거장에 속하는 미켈란젤로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대에도 이미 위대한 조각가라 불리었음에도 교황이 시키는대로 천장화를 그릴 수밖에 없는 그런 처지였다. 물론 교황이 원하는대로 그림을 그리진않았다. 저 반항하는 노예처럼 당시 주류였던 화법과 기법에 저항해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고 결국 그 그림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를 르네상스 3대 거장으로 부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자신만의 표현을 개척해낸 선구자. 그렇기에 그의 삶은 언제나 저항과 반항의 연속이었을것이다. 


이 작품은 그에게 시스티나성당의 천장화를 주문했던 율리우스 2세의 묘를 장식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과거의 성직자 또한 지금과는 많이 다르다. 유럽의 군주들은 왕권신수설, 신이 왕권을 인정했다는 의미를 부여받기위해 교황이 필요했다. 교황은 각국의 군주들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힘의 균형을 잡는 역할을 했고, 특히 율리우스 2세는 권력욕이 많아 직접 군을 이끌고 전쟁에 참여하기까지 했다. 으레 왕들이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화려한 궁을 짓듯, 율리우스 2세도 자신의 권력을 견고하게 하기위해 바티칸 대성당을 화려하게 재건했다.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대성당의 천장화를 그리게하고 라파엘로에게 벽화를 그리게 한 이가 그다. 그렇게 탈바꿈한 바티칸 대성당의 정 가운데에 자신의 묘지를 만들려했고, 그 입구를 장식하기 위해 미켈란젤로에게 40여개의 조각을 주문한다. 


계획은 눈부시게 화려했던 그의 묘지 앞에 미켈란젤로는 직접 제작한 열두 노예상을 세우려 했지만, 착공도 하기전에 1513년 율리우스 2세가 타계하고 아쉽게도 그의 시신은 쇠사슬의 성 베드로 성당(Basilica di San Pietro in Vincoli)에 미켈란젤로의 모세상와 함께 안치된다. 그리고 묘지 계획도 축소되어 두 노예상 뿐만아니라 추가로 제작중이던 네개의 노예상들은 갈곳을 잃게되고, 미켈란젤로는 두 노예상을 자신을 따듯하게 품어줬던 로베르토 스트로찌에게 선물한다. 이후 로베르토 스트로찌가 메디치가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프랑스로 추방되었을때 함께 프랑스로 오게 되었고, 루이13세의 재상이었던 리슐리외가 이 작품을 구입한다. 이후 국가의 재산으로 귀속되어 루브르 박물관을 장식하고 있다. 


초기, 죽어가는 노예상의 매끈한 피부표현에 비해 거친 흔적이 남아있는 저항하는 노예상은 미완성작이라 평가되었으나 최근 미켈란젤로가 의도적으로 거칠게 표현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우세하고 있다. 미완성의 완성. 미술학계에선 이를 논 피니토(non finito)라고 명명하고 그 대표작으로 이 두 노예상을 꼽는다. 미켈란젤로가 어떤 의도로 이 두 작품을 다르게 표현했는지, 실제로 완성한 작품인지 아닌지 현대의 우리는 모른다. 다만 조각이란 물질(대리석)에서 정신(조각상)으로 가는 과정이라 여겼던 미켈란젤로가 정과 망치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줌으로 대리석에 갇힌 조각상을 빼내듯 육체에 속박된 자유로운 영혼을 빼내는 그 과정을 남긴게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루브르 박물관에 간다면 치열했던 미켈란젤로의 삶을 들여다 볼 기회를 가지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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