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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박물관 꼭 봐야할 작품] 사계, 주세페 아르침볼도

루브르 TMI/루브르 작품 2020. 4. 1.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미술사조는 사실 19세기에 정리된 시대적 구분이고, 당대 화가들은 그저 후원자들을 잘 모실 수 있는 그림을 그렸다. 증기기관이 발명되어 물감이 대량생산되기 이전, 물감의 원료는 매우 비쌀뿐만 아니라 귀했기때문에 예술가들은 후원을 받아야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이는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은 거장도 예외는 아니었고,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자기소개서가 남아있는 이유이다. 후원자, 대게 왕족, 귀족이나 성직자들은 능력있는 소수의 예술가들을 후원했고, 시대의 흐름에 따른 그들의 취향이 미술 사조로 구분되었다. 


그런데 여기,

일반적인 취향과는 약간 다른 후원자가 있다. 그는 벌하라는 신하들의 간언에도 호방하게 웃으며 한 예술가를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결국 정치적 군사적 업적보다 주세페 아르침볼도라는 화가를 키운것이 가장 큰 업적으로 기억되고마는 막시밀리안 2세, 오늘 루브르 박물관에서 만날 작품의 주인공이다. 




루브르 박물관 르네상스관에 가면 눈을 한 번 깜빡이게 하는 작품이 네 점 걸려있다. 인물을 완벽하고도 아름답게 그려내었던 르네상스 시대 여느 작품과는 다른 이 작품들은 흡사 현대미술을 보는것같다. 그러나 루브르 박물관에선 너무나도 또렷하게 1573년 작품이라고 말한다. 대체 1573년 비엔나에선 무슨일이 일어난걸까.


주세페 아르침볼도(Giuseppe Arcimboldo, 1527-1593)는 이탈리아 사람으로, 아버지는 밀라노 대성당에 그림을 그릴정도로 유명한 화가였다. 그의 조수로 일하면서 예술적 소양을 갈고닦은 아르침볼도는 1562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페르디난트 1세의 눈에 띄어 궁정화가가 된다. 이때까지만해도 평범한 그림을 그렸지만 페르디난트 1세의 아들 막시밀리안 2세를 모시면서 당시의 기준으로 보기엔 괴랄한 작품들을 그려낸다. 당시 막시밀리안 2세는 대내적으로는 구교와 신교사이의 종교갈등을 풀어보고자 시도했지만 처참히 실패했고, 대외적으로는 오스만제국에 패해 굴욕적인 조약을 체결하는 등 안팍의 문제에 직면해 상당히 위축되어 있었다. 그런 그에게 1569년 1월 1일, 아르침볼도는 두 세트의 인물화를 선물한다. 



봄,여름,가을,겨울로 구성된 사계 한 세트와




땅,불,물,공기,으로 구성된 4원소 한세트. 


당시 곁에 있던 다른 신하들은 어찌 황제에게 이런 불경한 그림을 전달하냐며 분노했지만 막시밀리안 2세는 외려 배를 잡고 웃었다고 한다. 봄-여름-가을-겨울 4계절이자 소년-청년-장년-노년이 표현된 사계은 모든 시간의 흐름을, 지구를 구성하는 4원소 땅, 불, 물, 공기, 즉 이 지구 전체를 우리의 황제께서 관장한다는 어찌보면 막시밀리안 2세를 신격화하는 그림이었고, 이를 황제는 단번에 간파한것이었다.


황제는 진심으로 이 작품을 마음에들어했는데, 어느정도냐하면 1571년 아르침볼도가 감독한 축제에 다른 신하들과 함께 사계절 차림으로 치장을 하고 참석했다. 또한 1573년 작센의 선제후인 아우구스트에게 주기 위해 똑같은 작품을 한세트 더 그리라 명했고, 이 때 완성된 세트가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있다.(처음 그린 작품들은 스웨덴과의 종교전쟁때 약탈당해 여기저기 흩어져있다고 한다.)




루브르 박물관엔 겨울-가을-여름-봄 순으로 전시되어있는데, 아무래도 겨울이 막시밀리안 2세를 그리고 있기때문인듯하다. 마른 나뭇가지는 마치 왕관처럼 보이고, 밀짚 망토에는 막시밀리안의 이니셜인 M이 새겨져 있다. 우리야 만물의 소생을 봄으로 보고있지만 로마시대부터 서양에서는 겨울을 시작이라 보아왔다. 마른땅에서 레몬과 오렌지가 상징하는 희망이 피어난다는 것이다. 얼굴은 지혜로운 노인을 표현하기 위해 고목으로, 머리카락은 총명함을 상징하는 아이비 식물로, 입은 버섯으로 표현되었다. 가을은 열매를 맺는 계절을 상징하고 있다. 포도와 낙엽으로 머리카락을 만들고 호박 모자를 썼다. 배 코와 사과 뺨, 석류 턱, 버섯 귀 등 계절의 비옥함과 희미한 미소에서 오는 장년의 여유를 느낄 수 있다. 몸통은 포도주를 만드는 오크통인데 그래서인지 조금 취해보이기도 한다. 봄과 여름은 한층 화사해보이는데, 어떤 학자들은 봄과 여름은 여성으로 표현되었다고 추측한다. 여름 계절 과일과 채소로 구성된 얼굴은 환하게 웃고 있는데 눈부시게 빛나는 여름의 햇살이 느껴진다. 백합 꽃봉오리 코와 튤립 귀, 흰색 꽃들로 이루어진 뺨 등 꽃과 허브로 표현된 봄은 향기가 진하게 묻어나올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정도로 매혹적이다. 


새로운 예술, 새로운 과학, 진귀한 동식물에 호기심이 가득했던 황제와 이를 그림으로 구현했던 화가의 만남은 인류에게 위대한 유산을 남겼다. 어떻게 하면 더욱 더 정교하게, 더욱더 이상적으로, 더욱더 성스럽게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모두가 고민했던 시기, 아르침볼도의 신선한 시도는 황제의 지속적인 후원으로 매너리즘 시대를 장식했고, 당시엔 무능했던 막시밀리안 2세 또한 아르침볼도의 작품으로 사람들의 기억에 이름을 남겼다. 진정한 윈-윈 관계가 아닐 수 없다.


아르침볼도는 막시밀리안 2세의 아들 루돌프 2세때까지 궁정화가로 일하며 황제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으며, 노년엔 은퇴하고 밀라노로 돌아왔다. 이후 그의 작품은 세상에서 잊혀지다 피카소, 달리, 뒤샹과 같은 전위예술가들에게 재조명되어 초현실주의의 아버지로 다시 한 번 부상했다. 어찌보면 고루한 루브르 박물관의 회화 중 신선한 재미가 되는 아르침볼도의 작품을 보며 나의 인생은 지금 봄인가 여름인가 가을인가 겨울인가 고민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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