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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박물관에 가면 꼭! 봐야할 작품 Top 3!(루브르 박물관 3대 꽃, 함무라비 법전, 밀로의 비너스, 모나리자)

루브르 TMI/루브르 작품 2020. 3. 18.


파리의 박물관은 시대별로 소장품이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 중 가장 규모가 크고, 당연히 작품수도 많은 곳은 루브르 박물관입니다.


면적은 60,500m2, 18,000평,

소장 작품은 38만여점이며 그 중 고르고 골라 3만 5천여점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초콜렛 먹어가며 아무리 열심히 둘러봐도, 

한 번의 방문으로 루브르 박물관은 완전히 관람했다! 라고 말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때문에 그 수많은 작품 중 꼭 보셔야하는,

이것만 봐도 입장료가 아깝지 않을 작품 세 점을 소개드리겠습니다.


일명 루브르 박물관 3대 꽃이라 불리우는 함무라비 법전, 밀로의 비너스, 모나리자이며 

순서대로 리슐리외관, 슐리관, 드농관에 각각 전시되어 있습니다.



1.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함무라비 법전


모나리자보다도 임팩트가 강한 함무라비 법전입니다.

응? 형이 왜 거기서 나와? 느낌. 

게다가 이렇게 둬도 될까 싶을정도로, 무방비하게 전시되어있습니다.



너네 너무 사람들을 믿는거 아니니 


기원전 1750년경, 바빌로니아의 왕 함무라비가 법치주의 나라를 꿈꾸며 제정한 법들을 

강철보다 강하다는 섬록암에 새겨 곳곳에 세웁니다.

고도로 발달했던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이 함무라비 법전입니다.


함무라비 법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게 있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196조 평민이 귀족의 눈을 상하게 하면 그의 눈도 상하게 되리라.

200조 귀족이 귀족의 이를 상하게 하면 그의 이도 상하게 되리라. 


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심지어 230조는, 집이 무너져 집주인의 딸이 죽으면 그 집을 지은 건축가의 딸도 죽어야한다고 말합니다.

받은 피해 그대로 돌려주는 법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잔인한거 아닌가 싶지만 그때 당시 기준으로는 상당한 인권존중 법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피해를 받으면 더 심하게 복수를 했습니다. 

신분의 차이가 있다면 그 복수는 더욱 커졌습니다.

"자신이 받은 만큼만"으로 복수를 제한했던, 당시로서는 굉장히 선진적인 법이었습니다.


이런 형사적인 분쟁 뿐만아니라 경제, 문화, 종교, 정치 등 사회 전반적인 분야에 대한 

282개의 법조항이 빼곡하게 적혀있고, 

이를 통해 우리는 약 3700년전의 사람들이 어떤 생활을 하였는지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외 함무라비 법전에 따라 붙는말이 세계 최초의 성문법인데, 

1951년 기원전 2100년에 제작된 우르남무 법전이 발견되면서 그 타이틀은 넘겨주었습니다.


이 외, 세계 최초로 약탈된 문화재라는 타이틀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12세기 엘람(지금의 이란) 왕자에게 약탈된 것을 

1901년 프랑스 학자 모르간이 이끄는 발군단이 발견하여 프랑스로 가져왔습니다. 



2. 사랑의 비너스, 밀로의 비너스


우리에겐 사랑의 비너스!로 유명한 밀로의 비너스입니다.

여기에서 밀로는 작가의 이름이 아니라 이 비너스상이 발견된 그리스 밀로섬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


루브르 박물관 그리스관의 대미를 장식하는 공간에 설치된 이 비너스상은 훌륭한 보존 상태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섬세한 조각 기술 외에, 완벽한 황금비율로 유명합니다.


흔히 말하는 황금비율은 1:1.618로, 인간의 눈에 가장 편안한 비율입니다. 

배꼽을 기준으로 상체와 하체에, 머리 끝서부터 목, 목에서부터 베꼽까지, 

베꼽부터 무릎, 무릎에서부터 발끝까지에 이 1:1.618 황금비율이 들어가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미의 기준으로 통용되고 있죠. 8등신에 34-24-36 비율로 제작되었죠.


더욱 놀라운것은 이 비율이 단순히 조각 자체의 비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루브르 박물관에 가시면 다른 조각 작품과는 다르게 이 밀로의 비너스는



높은 단상에 전시되어있습니다.


우리의 소장품을 우러러보라!! 혹은 멀리에서도 잘보이게!!!로 그런게 아닙니다.

실제 이 비너스상이 전시되었을 것이라 추측되는,

밀로의 비너스를 가장 아름답게 감상할 수 있는 높이로 전시한 것입니다.


일례로,

아래에서 비너스상을 올려다보면 가장 멀리있는 머리는 작아보입니다. 

그래서 황금비율에 맞게 머리 크기를 키웠습니다.

조각에 원근법이 사용된, 어마어마한 수학전 계산으로 이루어진 작품입니다.


1820년 밭을 갈던 농부가 발견한 조각상을

마침 거기에 있던 프랑스 해군 장교 올리비에 부티에가 염가에 구매해 프랑스로 들여옵니다.



이후 사과를 든 손이 발굴되면서 원래의 밀로의 비너스 원형을 추측할 수 있엇으나,

팔이 잘려진 비너스가 더욱 매력적이라는 판단아래 복원을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3. 알고보니 엄청난 작품, 모나리자



루브르 박물관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회화 작품인 모나리자입니다.

신비로운 그녀의 웃음과 희미한 눈썹은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기억속에 강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100년전엔 그렇지 않았습니다.

당시 르네상스 3대 거장 중 가장 유명하지 않았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8점 중에 하나였던 모나리자는 

1911년, 이탈리아 청년 빈센초 페루자에 의해 도난당합니다. 

세계 최고의 박물관에서 도난사건이 벌어졌단 소식에 전 세계가 들썩였고, 

운명처럼 2년 뒤 루브르 박물관에 다시 돌아왔을 때 모나리자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 되었습니다.


작품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쏠리자 학자들이 이 작품을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그냥 리자 여사의 초상화인줄 알았던 이 그림이 상당히 신비롭다는것을 발견합니다.


이탈리아어로 mona는 여인을 존칭하는 madonna의 약자이고

리자는 초상화의 주인공 리자 게라르디니의 이름입니다.

프랑스에서는 모나리자를 라 조콩다(La Gioconda)로 부르는데, 조콩도씨의 부인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그림은 조콩도씨 부인 리자 여사를 그린 그림이죠.


1503년 경 조콩드씨의 의뢰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리자 여사의 초상화를 그리는데, 

어쩐일인지 의뢰인에게 그림을 넘겨주지 않고, 가지고 다니며 수정에 수정을 거듭합니다.

심지어 프랑스왕 프랑수아 1세의 요청으로 이탈리아를 떠나 프랑스로 삶의 터전을 옮길때에도 가지고 가죠.


왜 이렇게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이 그림에 집착했는지, 사후 프랑수아 1세에게 어떻게 이 그림이 넘어가기 되었는지, 

원근법의 귀재인 그가 풍경의 원근법을 왜 일부러 어그러뜨렸는지, 그녀의 미소는 무슨 의미가 있는지, 

왜 그녀는 관람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지, 눈썹은 그렸는데 지워진건지 안그린건지,

실제로 이 초상화의 주인공이 리자 게라르디니가 맞는지조차 수수께끼에 쌓여있습니다.


이 수수께끼가 모나리자를 더욱 신비롭고 아름답게 만들고 있죠.



루브르 박물관은 후기 르네상스 작품이 있는 관의 이름을 모나리자 관으로 명명하였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인 모나리자와 모나리자를 프랑스에 있게끔 만든 프랑수아 1세의 초상화를 

후기 르네상스(네오 르네상스) 작품들과 함께 전시함으로

시대를 초월한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한 존경과 프랑수아 1세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한게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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