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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를 지켜라! 루브르 요새의 탄생(루브르 박물관 역사, 루브르 박물관의 시작)

루브르 TMI/루브르 역사 2020. 3. 10.


루브르 박물관은 1190년대,

존엄왕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필립 2세의 명령으로 지어진 요새입니다.


      <필립 오귀스트 국왕(재위 : 1180~1223)>



이 사람이 존엄왕 필립


때는 바야흐로 봉건시대.

앵글로색슨계, 노르만계 공국, 거기다 바이킹족까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바람 위의 깃털마냥 가벼웠던 프랑스의 왕권을 강화하여 존엄왕이라는 별명을 얻은 왕입니다.


그는 3차 십자군 전쟁에 직접 참여했는데,

자기가 자리를 비운 사이 적들이 수도 파리를 공격할것을 대비해

파리 "외곽"에 두께 3m, 높이 9m, 길이 5km나 되는 성벽을 세우고 

그 너머에 우리의 루브르 요새를 세웁니다.


지금이야 루브르 박물관이 파리의 중앙이지

당시 파리의 왕권, 종교, 행정의 중심은 시떼(Cite)섬이었습니다.

왕궁(현재 최고재판소), 정부기관, 대성당(노틀담 성당) 다 시떼섬에 옹기종기 모여있었습니다.

도시 City가 시떼섬에서 유래되었다는 TMI...


                       <1200년대 파리와 필립 오귀스트가 세운 성벽(보라색)>


이 시떼섬과 수도 파리를 지키기 위해 루브르 요새와 성벽을 지었는데(보라색)

너무 잘 지켜서인가요. 부와 영향력이 거대해진 파리는 인구가 폭발하고,

결국 13세기 말 14세기 초 성벽은 무너뜨리고 루브르 요새만 남겼습니다. 


이걸 후에 샤를 5세가 왕궁으로 개조하죠.



1981년 미테랑 대통령이 루브르 박물관 대개조 프로젝트(그랑 루브르, 위대한 루브르)를 진행합니다.

따로 따로 운영되던 세 개의 입구를 통합하기 위해 지하를 파내는데(그 지하 매표소 지붕이 유리피라미드)


오잉?



묻혀있던 루브르 요새 시절의 헤자가 드러납니다.


우리 중세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보면 성문이 주요 장치로 등장합니다.

적이 나타나면 또르르르 성문을 올려 적들이 성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죠.


요새나 성을 지을때 적으로부터 보호하기위해 주위를 깊게 파고 

거기에 물을 채워넣거나 곰/사자와 같은 맹수를 키우거나

날카로운 창을 설치하였습니다.

이 공간을 헤자라고 하는데, 이게 그랑 루브르 공사때 드러난거죠!


뭐.. 우리에겐 기쁜 소식이지만 공사를 진행하는 사람들에게 예고없이 등장하는 문화재란 청천벽력...

이 부분을 살리고 공사를 진행하느라 상당히 애먹었다고 합니다.


함무라비법전이 있는 리슐리외관에서 밀로의 비너스가 있는 슐리관으로 가는길에

이 헤자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지하 공사때 발견한거니 당연히 지하로 가셔야 볼 수 있어요.



성벽을 유심히 바라보면 중간중간 요렇게 하트가 새겨져 있거나 혹은 십자가가 새겨져 있는데요, 

중세시절 연인들이 우리사랑 신께 맹세 뭐 이런 의미로 새겨넣은건 아니고


그 시절 여러 공방에서 돌을 깎아 납품을 했는데

어느 공방에서 이 돌을 만들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각 공방의 상징을 새기고

축조한 후 개수를 세서 임금을 지급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보라고 꾸며놓은 곳 외에도 여러곳에 분포해 있으니,

난 지금 지하인데 벽이 갑자기 낡아졌다!! 싶으면 아 이게 바로 중세의 흔적이구나 생각하시면 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구요, 루브르 왕궁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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