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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모지? 루브르 박물관 보이는 것의 모든것(피라미드, 개선문, 루이14세상)

루브르 TMI/루브르 가자 2020. 3. 16.


루브르 박물관은 작품 뿐만아니라 박물관 건축물 자체에도 의미가 깃들어있습니다.


아이들이 엄마 저건 뭐야? 하는 질문에 당당히 답하실 수 있도록

오늘은 루브르 박물관에 가면 보이는 것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루브르 박물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피라미드(Pyramid)


루브르 박물관에 입장은 안해도 방문은 하는 이유, 유리 피라미드 입니다.


유리피라미드는 

1984년 미테랑 대통령의 위대한 루브르 프로젝트(Le Grand Louvre plan)때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리슐리외관, 슐리관, 드농관 모두 각각의 입구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게 운영상 매우 비효율적이었던 거죠.


하여, 지하를 파내서 나폴레옹홀을 만들어 입구와 매표소를 통합하고,

그 지붕이자 주출입구로 유리피라미드를 세웁니다.


중국계 미국인 디자이어 야오밍 페이(I. M. Pei.)가 설계도를 내놓았을때

에펠탑을 반대했던 프랑스인들 답게 거세게 반대했습니다.

미테랑 대통령은 자기가 파라오인줄 아는가와 같은 비난과 조롱을 받았지만, 강행하였고

결국엔 에펠탑처럼 파리를 대표하는 구조물이 되었습니다. 


전세계 가장 위대한 고대 문화재 중 하나로 손꼽히는 피라미드를

현대의 소재인 강철과 유리로 만들면서

과거와 현재의 융합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개선문 옆 계단으로 내려가면 역피라미드도 감상하실 수 있으니 잊지 마시길



2. 알고보니 사람이름, 리슐리외관, 슐리관, 드농관


루브르 박물관은 유리 피라미드를 ㄷ자로 감싸고 있는 형태입니다

(TMI; 사실 ㅁ자 였으나 보불전쟁(1870-1871)때 튈르리 궁전이 불타서 전소됨)


왼쪽부터 리슐리외관, 슐리관, 드농관이며, 유명인의 이름을 따왔습니다.


1. 리슐리외(Armand Jean du Plessis, Duc de Richelieu, 1585-1642)

루이13세의 재상입니다. 

중앙집권을 강화하는 한편 경쟁 상대였던 합스부르크가를 견제하고, 

상공업을 장려하여 경제적 부흥을 일으키는 등 정치도 잘하긴 했지만 

문학가, 미술가를 보호하고 육성하기 위한 아카데미(Academic française)를 창설한 것이

루브르 박물관에 그의 이름이 남겨진 이유일 것입니다. 


2. 슐리(Maximilien de Bethune, Duc de Sully, 1560-1641)

앙리 4세의 재상입니다. 

우리에게 프랑스 왕!하면 떠오르는 이는 루이14세이나 프랑스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왕은 앙리4세입니다.

종교전쟁으로 피폐했던 프랑스의 재건을 이루었을뿐만 아니라, 

진심으로 백성을 긍휼히 여긴 몇 안되는 프랑스 왕이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은 고깃국물을 먹여야겠다는 일념으로 

와인에 빠진 닭, 꼬꼬방이라는 음식을 만들었다니 말 다했죠.


이런 앙리4세 곁에서 실무를 담당했던 사람이 슐리입니다. 꼬꼬방을 만든이도 슐리죠.

프랑스인들이 얼마나 그를 사랑하냐면 유로화이전 프랑스의 화폐는 프랑이었는데,

100프랑 뒷면에 슐리의 얼굴이 그려졌을 정도입니다.

우리나라 이순신급...


3. 드농(Le Baron Vivant Denon, 1758-1823)

루브르 박물관의 초대관장입니다.

나폴레옹의 정복전쟁에 동행하여 문화재를 발굴(이라쓰고 약탈이라 읽는다)했으며,

나폴레옹의 패배 후 문화재를 돌려줄 때 해괴한 방법으로 유명 문화재들을 지켰습니다(외규장각 돌려줘라.....)

때문에 프랑스인들이 업적은 인정하나, 드러내놓고 칭송은 못하는 인물입니다.

그래도 초대 관장인만큼 이름이 남겨지긴 했습니다.



3. 그냥 허전해서 둔 조각상이 아니죱! 루이14세 기마상


유리피라미드 앞에 누군가가 용맹하게 말을 타고 있습니다.

프랑스를 비롯하여 여기저기 돌아다니다보면 이런 청동 조각상들이 많이 있는데

다들 각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문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루이14세입니다.

우리가 프랑스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의 초석을 닦은 사람이 바로 루이14세이기때문입니다.

화려한 궁전과 궁중문화, 식문화, 예술, 장인정신이 깃든 명품...

모두 자신의 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한 수단이었으나, 가장 부흥시켰던것도 사실이죠.


특히 왕궁을 루브르궁에서 베르사유궁으로 옮길때, 

왕실 대대로 물려받고 또 자신이 개인적으로 수집했던 작품 500여점을 

왕실 소장고에서 루브르 궁으로 옮겼습니다.



지금의 학사원(과거 왕실 소장고)과 루브르 박물관을 잇는 예술의 다리(Pont des Arts)의 이름이

이 시절 "예술작품이 건너간 다리"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왕이나 특정 귀족들만 향유할 수 있었던 왕실 작품을

예술가들에게 신분을 막론하고 감상할 수 있게 했다는것이 

지금의 루브르 박물관을 있게한 근간이 아닐까 합니다.



4. 음... 쁘띠!! 1차 개선문


루브르 박물관과 마주보고 아주 작은 개선문이 있습니다.

개선문은 본디 승리를 기념하여 세우는 건축물이고, 파리를 비롯 유럽 곳곳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 중 우리가 흔히 개선문이 칭하는 파리 유명관광지는 샤를드골광장에 있는 2차 개선문이고,

루브르 박물관 앞에 그 전신인 1차 개선문이 있습니다.

(TMI; 3차 개선문도 있으며 파리 1차, 2차, 3차 개선문은 모두 일직선상에 있습니다.)


나폴레옹은 이탈리아 정복전쟁때 만난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에 감동하여

루브르궁 앞에 자신의 승리를 기념하는 개선문을 세우길 명합니다(1806-1808).

둑은둑은 설레는 개선문 오픈날, 생각보다 앙증맞은 규모에 나폴레옹이 못마땅해했고

그래서 세운것이 2차 개선문이라는 설이 있지요.


현재 전망대로 이용될 정도로 큰 규모지만 2차 개선문이 완공되기 이전, 

나폴레옹은 쓸쓸히 숨을 거둡니다.



지금까지 루브르 박물관 유리피라미드 앞에서 보이는 모든 것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모두 오흐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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